대통령은 자연인이 아니라 헌법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국가 기관이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인 동시에 삼권분립에 따라 행정부의 수반이기도 하다. 그렇게 헌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국가 기관(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을 총괄하는 비서실장은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다. 상징성도. 그러므로 비서실장 임명은 민의에 따라야 한다.
이번에 국민들은 총선을 기화로 하여 윤석열 대통령에게 사실상 정치적으로 탄핵을 했다. 대통령 자신이 기회있을 때마다 수시로 "국민은 늘 옳다"라고 했다. 그런데 국민들이 우려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말로는 국민을 떠받들듯 '늘 옳다'라고 하고는 행동은 이와 정반대로 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멀리 볼 것도 없이 바로 비서실장에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을 임명하겠다는 거다. 원 전 장관은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겨룬 바 있다. 지난 날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재판을 받고 있는 피의자라며 완강히 영수회담을 거부하여 왔다. 아무리 피의자라고는 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을 모를리 없을 윤 대통령이)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거부하여왔던 것은 이 대표의 위상을 정립하여 주기 싫고 '대표'라는 실체도 애써 외면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대표와 겨뤄 완패한 원 전 장관을 비서실장에 보란듯이 임명하겠다는 것은 원 전 장관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동시에 이 대표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다름이 아닌 더 큰 오해로 해석될 여지 또한 다분하여 윤 대통령은 말뿐 아직도 내심의 진의는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민들에게 역정을 내는 게 아닌가 싶어 우려가 깊다. 국민적 우려가 기우에 그치게 하려면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원 전 장관 카드를 접어야 한다.
지난 4.10.총선에서 이 대표보다 더한 혐의를 갖고 재판을 받고 있는 후보들이 많이 당선됐다. 국민의힘 한동훈 상임선대위원장은 '범죄자'운운하였지만 국민들은 이미 표로 그들에게 (사법부의 판단과 별개로) 정치적 면죄부를 줬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각 지방 자치단체장 선출 시 전과 유무는 선출 시 그다지 중요한 고려 요소가 아니다. 물론 강력범죄나 파렴치범은 예외로 그런 후보는 여야를 막론 단 한명도 없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엄중하게 받아드리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한 후 "만약 이런 식의 인사가 계속된다면, 총선 결과를 무시하고 국민을 이기려는 불통의 폭주가 계속되는 것"이라면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살피고 무겁게 받아 인선을 달리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남은 임기 3년을 또다시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불통 속에서 보낼지, 야당과 함께 민생 회복에 나설지 그 선택은 윤 대통령에게 달려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고 충고했다.
윤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비판은 여당에서도 이어져 안철수 의원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에서 인정하는 화합형 인물이 중용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국민이 피해를 보게된다"라고 강조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여당에 108석만 주었다는 것은 명줄만 붙여놓은 것"이라며 예의 독설을 퍼 부은 후 "바닥을 쳤다는데 아직 바닥이 아니다. 지하실도 있다"며 "대통령실이 변화하지 않으면 국민이 여당을 더 외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