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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성탄특집산문] 황 국무총리, 자신의 딸에게 "내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 죽일 수는 없다"

정순종 기자   |   송고 : 2024-12-23 21:55:06

황 국무총리에게는 늦게 얻은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막내딸이 시댁에서 자식을 생산하게 되었는데 난산이었던 모양입니다. 산후가 너무 좋지 않는데다, 안타깝게도 전남 순천처럼 대학병원도 없고 고명한 산부인과 전문의도 없었던 터라 달리 차도를 기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지금의 순천은 김문수 국회의원이 애쓴 덕에 대학병원의 설립절차가 차근차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딸은 아버지인 황 국무총리에게 시집가기 전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잘 돌봐준  개인 여비서였던 솔거노비를 보내달라고 하소연하였지만, 황 국무총리는 그럴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유인즉슨 막내딸의 여비서였던 솔거노비 역시 출산한 아이의 건강이 너무 좋지 않아 어미의 극진한 보살핌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막무가내로 애원하는 막내딸의 요구를 황 국무총리는 다음과 같이 냉정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그것도 전화도 아닌 카톡으로 문자만 날렸습니다.

 

“내 자식 살리자고 남의 자식 죽일 수는 없다.”

 

그러고는 바로 카톡에서 수신 거부를 해 버렸습니다. 더 이상의 하소연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였던거죠. 결국 그토록 애지중지 사랑하던 막내딸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솔거노비의 아이는 살았습니다.

 

 사진, 네이버 이미지에서 가져온 황희 정승의 묘소

 

이상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620여 년 전 여말선초(고려 말~조선 초)시대에 살면서 영의정(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을 지냈던 황희 정승에 관련한 야사입니다. 당대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높은 학식과 고매한 품성에 따뜻한 인간미까지 지녔던 황희 정승이 살아온 궤적은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뿐만 아니라 후세에 귀감이 될만한 이런저런 야사에 교훈을 실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특히 처세술로 잘못 읽히고 있는, 그 유명한 일화, 마당쇠 둘이 싸우자 한 마당쇠에게는 “너 말이 옳다.” 시차를 두고 또 한 마당쇠에게는 “너 말이 옳다.” 그런데 한 사람 말은 맞고 한 사람 말은 틀리다며 지적하던 부인에게는 “당신 말도 옳소.”했다는. 얼핏 들으면 마치 황희 정승의 처세술 내지는 사람을 잘 부리려는 용인술로 곡해할 수도 있으나 굳이 마당쇠에게 잘 처세하고 용인할 위치도 아니었거늘 집안의 화목을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짐작됩니다. 물론 그 대목에서도 우리는 황희 정승의 훌륭한 인품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황희 정승이 무려 여섯 임금을 모실 때는 지금처럼 사회가 복잡하지 않아 이조, 호조, 예조, 형조, 병조, 공조 등 여섯 판서 직을 모두 역임하였으며, 영원한 지지율 1위 세종대왕(이도)과도 호흡이 척척 잘 맞아 우의정 1년, 좌의정 5년, 영의정은 무려 18년을 지내는 등 총 24년을, 지금으로 치면 내각의 국무위원을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서인지 (공동체 의식), 천민의 자식까지도 귀히 여길 줄 알아 (생명 존중 사상) 복을 받아서인지 90세까지 장수하였다는 거 아닙니까. (당시 평균 수명 47세)

 

여기서 우리가 배우자고 하는 정신이 바로 황희 정승이 남긴 공동체 의식과 생명 존중 사상입니다. 황희 정승은 자신의 막내딸이 세상에서 둘도 없이 소중했을 테지만 결코 신분의 높고 낮음이 없이, 천민의 자식 생명을 자신의 자식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긴,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당시는 부모 중 한 사람이라도 노비이면 그 자식도 태어나자마자 노비가 되는 시대로 생명의 가치가 가벼이 여겨지던 시절이라 정승의 기침 소리 한 번에 노비의 자식은 죽고 자신의 자식은 살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황희 정승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기준에 따른다면 어마어마한 희생이었던 거지요.

 

이처럼 황희 정승이 자신의 자식까지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후세에게 남긴 교훈은 공동체 의식과 생명 존중 사상인데, 짐짓 600여 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순천에도 그러한 범주의 인물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반추하면, 지난 21일 순천대 산학협력관 파루홀에서는 김문수 국회의원의 비상시국의정보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도 공동체 의식과 생명 존중 사상을 이야기하더라고요. 듣자마자 깜놀한 필자의 뇌리에 황희 정승의 야사가 데칼코마니처럼 겹쳤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기억 속에서 김 의원의 어록을 끄집어 냈습니다.

 

 

“하늘에서는 헬기가 날고 계엄군이 국회로 총을 갖고 들어와 너무 무서웠지만, 저는 계엄령이 선포되자마자 국민의 생명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두려움을 떨치고 계엄 해제를 위해 제일 먼저 뛰어갔습니다.” 

 

“저는 시민들의 응원으로 ‘여순 사건' 개정(안)과 의대유치를 7개월 만에 이뤄냈습니다.”

 

"공정하고 정당한 방식으로 정치를 해야 합니다."

 

“경전선 우회든 의대유치든 윤석열이한테 의존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저는 편법적이고 불법적인 방법보다는 시민들과 함께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성과를 냈습니다.”

 

“갈라치기라든가 나만 살겠다는 식의 이기적인 사고를 배척하고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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